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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미나리, 줄거리, 등장인물, 한국이민사회의 역사

by 나혼산밍키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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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가족의 삶과 애환을 그린 영화입니다. 

줄거리

지역은 미국 아칸소, 제이콥 가족이 등장합니다.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던 가족은 아칸소로 이주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제이콥이 가지고 있던 꿈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의 작물을 키워서 성공하겠다는 농부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인생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서였습니다. 제이콥의 직업만으로는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허벌판인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던 땅에 도착한 가족들, 이들은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집은 비바람과 폭풍에 쉽게 흔들리고 물도 샜습니다. 불안정한 이 가정에 순자가 등장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이콥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이웃을 일꾼으로 고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나을 거 같지 않았던 아들의 심장이 기적처럼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식물이지만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와 대비되면서 결국에는 달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순자도 갑자기 뇌졸증이 와서 거동은 할 수 있지만 전만큼 몸을 온전하게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던 순자가 쓰레기를 태우다가 농작물을 보관하고 있던 창고에 불이 붙게 되고 모든 수확물, 농사의 결과물이 타버리게 됩니다. 이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위기에서 가족은 더욱 끈끈해지고 다시 농작물 재배에 힘쓰게 됩니다. 결국에는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다섯 식구가 아칸소에서 잘 적응해 나간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아빠 제이콥 - 직업은 병아리의 성별을 분리하는 감별사로 캘리포니아에서는 병아리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돈과 생존이 아주 중요하고 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농사로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굴뚝의 연기를 궁금해하는 아들에게 제이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쓸모 있는 수컷이 되어야만 해" 즉, 쓸모가 없으면 버려진다는 사고방식이을 지니고 있습니다.

엄마 모니카 -  제이콥의 아내로, 손이 느리다. 이상적인 사람으로 제이콥이 가족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꿈을 꾸고 있다.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딸 앤 -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자기할일도 스스로 잘하는 똑 부러졌다. 엄마를 걱정해 주면 살림도 도와주는 착한 딸이다. 

둘째 아들 데이빗 -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이다.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다. "데이비드 뛰지 마"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미국할머니를 상상했던 데이비드는 한국할머니인 순자가 못마땅하고 어색해합니다. 

순자 - 모니카의 엄마, 흔히 볼 수 있는 손자를 예뻐하는 할머니 캐릭터입니다. 모니카의 요청으로 어린 손자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아칸소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 

미국이민역사

아시아인들의 미국이민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라든지 필리핀 사람이 가장 먼저 미국으로 넘어왔다든지 중국인 유학생들이 미국땅에 처음으로 밟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는 19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 후 1860년대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는데 많은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면서 아시안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민자들에게 낮은 임금으로 노동을 시키다 보니 본토 사람들은 일자리를 뺏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민자들과 대립하게 되면 차별과 핍박이 늘어나게 되었다. 1882년에는 중국인 배척법이 생기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일본인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하와이 섬에 사탕수수를 재배하러 갔습니다. 그 후 한국인 이민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기록상으로는 1902년 102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가져가게 되면서 한국인들에게 비자나, 여권이 발행되지 않게 되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인들보다 낮은 임금으로 일하게 되면 일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원천봉쇄로 한국인들의 해외노동이 발이 묶이게 됩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미국으로 넘어간 인원은  7,200여 명 정도 되는데 이중의 일부는 계약이 끝나고 하와이에 남거나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1910년 대한민국이 조선의 식민지가 돼버리고 맙니다. 해외입국이 어렵게 됐지만 이미 미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식민지가 되기 전부터 미국에 살고 있었으니 일본인이 아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주장이 인정되면서 1913년까지는 무국적자라고 주장하는 조선인들이 미국 본토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한국전쟁의 발발로 미군과 결혼한 여성, 전쟁고아 등이 미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5년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이민러시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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